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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완벽한 음표보다 영혼 담긴 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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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오늘날 음악계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영재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들려오는 젊은 연주자들의 승전보는 이제 일상이 됐고 그들의 기술적 완성도는 완벽에 가깝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수많은 제자를 마주하며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안타까운 갈증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모든 음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완벽한 연주들 사이에서 정작 그 연주자만이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목소리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셀 셔먼은 ‘피아노 이야기’에서 음악적 기술을 단순한 물리적 훈련이 아닌 정신적 탐구로 봤다. 건반을 누르는 동작 하나에서도 중력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중력과 함께 춤춰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기술은 악기를 길들이는 수단이 아닌 악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영혼의 울림을 전달하는 통로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은 종종 이 순서를 뒤바꾼다. 더 빠르고 자극적인 기술에 집중하느라 정작 예술가적 영혼을 돌볼 여력이 없다. 손가락의 속도가 마음의 속도를 앞지를 때 음악은 생명력을 잃고 화려한 소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셔먼은 진정한 음악적 권위는 소리를 지르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리 사이의 침묵을 지배하는 힘에서 나온다고 했다. 기교라는 외피보다 그 안에 담긴 연주자의 인격과 고뇌가 더 큰 울림을 준다는 예술의 영원한 진리다. 과장되지 않은 진실함, 음악의 본질이 가진 정공법이 여전히 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술 너머의 세 가지 눈이 필요하다.

첫째, 악보 이면을 읽는 눈이다. 작곡가가 악보 안에 심어 놓은 의도를 포착하고 그 시대의 공기와 내면 서사를 자신의 음악적 언어로 일깨우는 과정이 생략된 연주는 기계적 재현에 머물 뿐이다. 악보상의 셈여림 기호는 단순한 음량이 아니라 정서적 기상도의 변화이며 음표 하나하나에 담긴 망설임조차 해석으로 끌어안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둘째, 자신을 객관화하는 귀다. 남의 연주를 흉내 내는 유혹에서 벗어나 지금 내가 내는 소리가 나의 내면과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성찰이 요구된다. 셔먼은 자신의 연주를 듣는 것은 거울 앞에 서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 고통을 통과해 자신을 속이지 않는 소리를 찾아낼 때 비로소 타인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는 진실함이 태어난다.

셋째, 음악 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력이다. 훌륭한 연주자는 악기만 알아서는 안 된다. 문학적 상상력이 결여된 선율은 건조한 물리적 진동에 머물 뿐이다. 시와 회화, 철학적 사유가 음악과 만날 때 소리는 비로소 입체적인 생명력을 얻는다.

예술가는 가르쳐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하는 존재다. 교육자의 역할은 근육을 훈련시키는 조련사가 아니라 예술적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인내하며 길을 터 주는 조력자여야 한다. 씨앗이 꽃을 피우기 위해 어둠 속의 시간이 필요하듯 예술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단련만큼이나 깊은 침묵과 사색의 시간이 절실하다.

무한 경쟁의 시대. 일등 영재를 골라내는 효율성에만 급급하기보다 한 명의 성숙한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는 깊고 넉넉한 토양이 돼 주길 소망한다. 완벽한 연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인간적 고뇌와 숭고한 아름다움이다. 결국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가장 빠르고 강한 소리가 아니라 가장 진실하고 고귀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율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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