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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의 백건우 “제대로 치고 싶은 욕망뿐…연주는 계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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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70주년 슈베르트 신보 발매
내달 3일부터 전국 리사이틀 시작
“음악과 함께 내 안에서 음악 찾아야”


피아니스트 백건우 [유니버설뮤직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56년 11월, 열 살의 소년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김생려(1912~1995)가 지휘하는 해군교향악단(서울시립교향악단 전신)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그로부터 70년. 한 길을 걸어온 ‘건반 위의 구도자’는 이제야 ‘음악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섰다고 고백한다.

올해 데뷔 70주년과 80세 생일(5월 10일)을 맞아 슈베르트 소나타 신보를 발매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최근 기자들을 만나 “아직도 제대로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구도자에게 음악은 끊임없는 탐구의 여정이다. 그는 “하나의 곡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선 적어도 세 번은 되돌아와야 하며, 그 과정에 20~30년이 걸린다”고 했다.

거장의 연주 동력은 ‘완벽’이 아닌 ‘결핍’과 ‘불만족’이었다. 과거엔 아무리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한 곡도 시간이 흐른 뒤 마주하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새롭게 드러난다고 했다.

여든의 생일에 고른 곡은 슈베르트다. 피아노 소나타 13번, 14번, 18번, 20번을 수록해 앨범으로 냈고, 다음 달 3일부턴 전국 리사이틀에 나선다.

그는 “내가 곡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곡이 나를 선택한 것”이라며 “슈베르트는 종종 인간인 쓴 것인지 천국에서 온 것인지 착각이 들 만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고 했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슈베르트를 듣다가 잠이 든다고 해서 무엇이 대수인가. 천국에서 깨어나게 될 텐데”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특히 슈베르트 소나타 13번(D.664)에 대해 “내 연주 인생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곡”이라며 “가장 이르게 배운 피아노 소나타 중 하나”라고 회상했다. 이 곡은 백건우가 열다섯 살에 미국 줄리아드 음악에서 만난 러시아 피아니즘의 거장 로지나 레빈을 사사할 당시 배운 곡이다. 하지만 그는 젊은 시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슈베르트에 다가선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거장에게 연습은 ‘사유의 경험’이다. 그는 “경험이 쌓일수록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보인다. 아직 불만스러운 게 남아있기에 계속 돌아오는 것”이라며 “그 곡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말한다.

수십 년간 이어온 연주 생활이 늘 안온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스트레스와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유니버설뮤직 제공]


역설적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마주한 지점에선 자유를 만난다. 백건우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남은 것은 음악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제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됐다는 고백이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은 많다. 그는 “내가 연주한 곡들을 보면 레퍼토리가 매우 많은 편이지만, 아직 시작도 못 한 곡들이 너무 많다”며 “프랑스, 동유럽, 스페인, 영국 등 아직 손도 못 댄 좋은 작품들이 많다. 더 다양한 레퍼토리를 시도하고 싶다”고 했다.

올 하반기 백건우는 오랜 음악 여정을 담아온 자서전을 낸다. 그는 “한국에서 미국, 유럽에서 동구라파까지 내가 속한 모든 세상이 변하는 시대에 그동안의 연주 생활을 해온 것을 알리는 것도 의무라고 여긴다”고 했다. 그가 살아온 시대와 지금 살아가는 시대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세계처럼 보인다.

특히 어린 후배들을 보면서도 그는 많은 생각이 오간다. 최근 한 콩쿠르에서 만난 후배가 조언을 해달라며 찾아왔다며 당시 그는 “자네는 음악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고 한다. 재능은 있었지만 콩쿠르의 우승, 자신의 위치를 빨리 찾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주자를 향한 조언이었다. 처음엔 의아해하던 후배 연주자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거장의 말을 인정했다.

백건우는 “요즘은 집에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무슨 장면이든 볼 수 있고, 유튜브 조회수나 음반 판매량이 (음악성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위태롭고 위험하다”며 “무엇을 하든 음악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서 멀어지면 안 된다. 콩쿠르 전에 자기 자신 속에서 음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14개 도시를 돌고, 자신의 생일날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를 마무리할 그는 “어떤 분은 나의 스크랴빈에서 죽음을 느꼈다고 했고, 어떤 분은 ‘열정 소나타’를 듣던 중 엉엉 소리 내 울었다”며 “각자 느낄 수 있는 세계의 깊이는 알 수가 없다. 새로운 걸 발견하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에겐 늘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수사가 따라다니지만, 백건우는 “내겐 좀 무겁다”고 말한다. “누구나 자기 하는 일에 충실하고 노력하는 분이면 다 구도자”라며 “꼭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구도자의 철학은 ‘음악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진실은 계속 변한다는 말을 자주 인용해요. 그렇기에 진실은 하나로 정해놓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게 변하기 때문에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얘기할 수 없죠. 우리에게 은퇴라는 건 의미가 없어요. 하고 싶은 곡이 너무 많은데 아직 많은데 다 못하고 있죠. 일생이 너무 짧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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